'한일전' 무게 모르는 벤투, 상처만 줬다

2021. 4. 17. 23:35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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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은 10일 동안 3차례나 한일전 특수성을 안다고 강조했지만 막상 경기에선 전반 내내 모험적인 전술 시험으로 선제 2실점 및 0-3 완패를 자초했습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정말 알긴 아는거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파울루 벤투(52·포르투갈) 감독은 10일 동안 3차례나 “한일전 특수성을 잘 알고 있다”며 강조했지만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는 일본을 상대로 실험적인 선수기용으로 전반 2실점 및 0-3 완패를 자초했습니다.

3월25일 일본전에서 0-3으로 참패한 뒤 한국 축구팬들의 절망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축구만은 일본에 이긴다는 자부심이 짓밟혔습니다. 원망은 벤투 감독에게 향했습니다. 처음부터 주전이 빠져 승산이 없는 경기를 벤투 감독이 강행해 패배를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벤투 감독이 가볍게 여겼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강인(20·발렌시아) 공격수 전진배치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준우승 당시나 스페인 라리가(1부리그) 소속팀 발렌시아에서도 봐온 광경입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홀로 센터포워드로 내세워, 이강인이 전반 내내 몸싸움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험적인 공격 전술이 실패하는 동안 일본은 2골을 먼저 넣었습니다. 벤투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강인을 빼고 전문 공격수 이정협(30·경남FC)를 넣으며 테스트 실패를 인정했지만 사실상 패배는 전반에 이미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안다”, “특별한 경기”, “의미를 잘 알고 준비를 하려고 했다.” 벤투 감독은 15일 명단 발표 기자회견부터 경기 하루 전과 패배 후인 3월 24, 25일까지 한일전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일전, 그것도 원정에서 분위기를 가를 첫 45분 동안 파격적인 전술시험을 하며 2실점했습니다. ‘지진 않겠다’는 생각마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3년째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국민감정도 모른다면 직무유기입니다. 한국은 6.25 전쟁 여파로 홈경기도 치르지 못한 1954년 FIFA월드컵 및 1956년 올림픽 예선 일본 원정 2승 1무 2패를 시작으로 축구 한일전 상대전적 우위를 놓치지 않으며 식민지배 상처를 극복해왔습니다.

지금보다 국력 차이가 극심했던 시절 ‘우리도 일본에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바로 축구 한일전입니다. 42승 23무 15패라는 A매치 역대 전적에는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역사의 아픈 기억을 떨쳐나간 국민들의 애환이 담겨있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아시아-유럽 이동을 어렵게 하면서 일본보다 해외파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시작부터 불리한 환경이었습니다. 일본이 19명 차출에 실패하고도 유럽파 9명을 부르는 동안 한국은 2명밖에 소집하지 못했습니다. 해외파가 일본이 더 많다는 차이가 차출이 쉽지 않게 되자 더 두드러졌습니다.

전력 열세가 불가피한데 홈경기도 아닙니다. 최근 일본은 하루 최대 1854명이 확진판정을 받는 등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한국보다 높기도 합니다. 절대 져선 안 된다는 한일전 특수성까지 생각한다면 ‘왜 굳이 지금 해야지?’라는 반응이 경기전부터 한국에서 나온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3월15일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 준비를 위해 활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일전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하기 힘든 얘기입니다. 왜 전반 내내 모험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축구가 유독 내셔널리즘이 강한 것을 39년차 축구인이 모를까. 한국을 무시한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합리적 의심입니다. 추진 과정부터 반대 여론이 거셌는데도 벤투 감독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 대한축구협회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닛칸스포츠’는 “먼저 제안한 것은 맞지만 수락은 뜻밖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군부 쿠데타 여파로 미얀마가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을 할 수 없자 대체 경기를 수소문한 일본이 혹시나 이웃나라에 연락해봤는데 대한축구협회가 받아줬다는 얘기입니다.

불리한 원정경기가 너무도 뻔한 시점에서 A매치를 강행한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특수성을 안다면서도 월드컵 예선 준비를 위한 ‘시험 무대’로만 취급한 벤투 감독 때문에 축구팬, 나아가 국민들은 성사 자체를 반대한 한일전 완패를 지켜보며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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